마당을 나온 암탉 책읽기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원작을 보게 되었다.
<동화>라고 하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읽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듯 했다.

오리를 친자식처럼 키우는 어머니 닭의 모성애.
살기 위해 누군가를 먹어야만 하는 세상.

닭장에 갖혀 강제되는 모이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인가.
마당에서 특권을 누리며 역시 만족하며 살아갈 것인가.
마당 바깥의 들판에서 자유의 댓가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많아지지만,
하나같이 마음 한쪽이 찌뿌둥해지는 내용이다.

분명한 것은, 암탉 잎싹이는 일관되게 꿈을 쫓는 닭이라는 사실이다.
닭장을 벗어나 마당으로 나오길 염원했고,
마당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에는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 나온다.
알을 품고 싶어서 알을 품었고,
닭이 아닌 오리를 친자식처럼 보살핀다.
그리고, 청둥오리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길 꿈꾼다.

어떤 역경에도 꿈을 버리지 않는 닭의 모습을 보고,
사람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참 힘이 되는 '우화'다.

캔 커피 맛 하루 한숟갈


과연 이것으로 잠을 쫓을 수 있는가?

잠을 쫓은 만큼 꿈을 쫓아갈 수 있는가?

다음 날의 업무에는 지장이 없을까?

의문이 가득한 밤.

알루미늄 캔 속에 담긴 커피 주제에

온갖 질문을 불러온다.

이들에 맞서 온갖 핑계가 자라나기 전에
한 글자라도 더 적고
한 뼘이라도 더 깊은 생각을...

비타민C 하루 한숟갈


씁쓸하지만, 혀 끝에 맴도는 달콤함.

혈관을 타고 몸 구석 구석으로 건강에 좋은 무언가가
퍼져 나가는 상상을 해 본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움을 부르는가?
이처럼 많은 가능성과, 풍족함이 넘치는 지구 위에서...

삶이 가져다 주는 흥미로움을 한껏 즐기지 못하고,
점점 일상에 매몰되어 흘러가는 시간이 두렵다.

그 시간의 끝에 속이 텅 빈 껍데기같은 자신이 기다릴까 무섭다.


하지만 씁쓸함 뒤에 마지막 희망처럼 남는,
온 몸을 깨우는 상쾌한 그 맛을 닮아가야 겠다.

소유냐 존재냐 책읽기


소유냐, 존재냐?

어려운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버린 채 열어본 책은 생각보다 읽을 만 했다.
책을 덮고 나서, 꼭 다음에 한번 더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직접 불교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한 삶이란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아무리 좋은 책도 마음을,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읽은 보람이 없다.
내 삶의 양식은 과연 소유하는 것에서 존재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하루하루다.
얼마간의 봉급과, 통장에 찍혀 나오는 금액이 가져다주는 소유의 만족감에 젖어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어려움이 아닌,
책에서 이해한 것을 삶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어려움이
견뎌내기 힘들다.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가지기 위한 삶이 아니라
무언가로 존재하기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거기에서 분명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유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존재를 지향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저자의 바람대로 새로운 세상, 더 희망적인 미래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제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 제목의 물음에 똑부러진 대답을 할 시간이다.
최소한 고민한 흔적이라도 역사의 흐름 안에 남겨야 할 일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책읽기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고르고 보니 '글쓰기'보다는 '글쓰기 강좌'를 설명하는 책이었다.

나름 흥미로운 분야라서 쭉 읽어나갔는데,

만약 서울대에서 저자의 강좌를 듣는다면
참 힘들고 어려운 수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수업 시간마다 과제로 일정한 주제의 글을 적고, 또한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난 뒤
소감을 댓글로 다는 방식의 수업 진행은 흥미로웠지만,

그렇다면 굳이 매주 한 교실에 모여서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주어진 지금,
물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에도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글쓴이>의 치열한 투쟁에 의해 만들어지는 창조물이기에...

누군가의 평가나 첨언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익명의 공간에 날것으로 던져놓고 비평을 받는 것도 나을 듯 싶다.

단지, 매 주 정해진 시간이라는 틀과, 마주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강좌는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스로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글쓰기를 단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득 예전 PC통신 시절의 천리안, 나우누리 등지에 있던 소설창작 동호회가 생각나기도 했다.
주로 당시 유행하던 판타지 장르의 소설 팬들이 모여서 서로 작품을 연재하곤 했는데,
그 명맥이 지금도 인터넷 소설연재 사이트로 가늘게 이어져가고는 있지만
PC통신의 상징인 파란 화면에 흰 글씨로 또렷하게 적혀있던
수많은 연재물들과 그것을 남기기 위해 밤을 환하게 밝혔던 이름모를 저자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야말로 저자와 독자간의 소통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즐기는 글쓰기를 실천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 '강좌'라는 딱딱한 방식보다는
자발적인 '연재'가 가능하도록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방식이 더 좋지 않을까?

기존의 연재 공간에서 느끼기 힘든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정이 숨쉬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성취감과 흥미를 더욱 돋굴 수 있는 양념으로
게임화(Gamification)된 시스템을 도입해도 좋을 것 같다.

'점수', '추천수', '등급' 같은 식상한 내용을 조금 더 세련되게 바꿔서...
작가의 공간을 부여, 글쓰기를 통해 얻은 포인트로 저자와 독자가 함께 꾸밀 수 있도록 한다든가,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바로 인터넷 컨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든가,
연재물이 게시될 때 SNS 서비스와 연동하여 독자들을 모을 수 있게 한다든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글쟁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등장했으면 하는
망상을 잠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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